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42-1943년 폭염 (문단 편집) === 7월 말 === 서울은 20일에 다시 32도를 기록, 그 뒤로 서서히 기온이 올라가 24일에 최고 '''36.0도'''로 1942년 한해의 가장 높은 극값을 기록하였고, 최저 역시 '''25.9도'''로 한해 가장 높은 최저 극값을 기록함과 동시에 서울의 첫 열대야가 발생하였다. 25일에도 35.7도, 25.7도를 기록하여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되는 듯 했으나..., 26일에 기온이 크게 떨어져 폭염과 열대야가 동시에 물러갔으며, 이후 31일까지 31도선의 기온을 유지하였다. 대구는 20일에 다시 36도로 조금 꺾였으나, 다시 36~38도의 날씨를 유지했고, 28일부터 다시 39도를 넘어 '''39.7도''', 29일 '''39.5도''', 30일에는 '''38.5도'''를 기록함과 동시에 최저기온도 한해 가장 높은 '''26.3도'''를 기록하였고[* 같은 날 서울의 최저기온이 '''19.7도'''로 7월치고 다소 낮은 기온을 기록된 것과 완전히 대비된다.], 31일에는 다시 '''39.5도'''로 극한을 향해 달려갔다. 하지만 최저기온은 24.7도로 열대야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났다. 강릉은 한술 더 떠서 7월 26일 아침 최저기온이 무려 30도를 넘어[* 6시 기온 31.1도] 기상 관측사상 최초의 초열대야가 발생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